강형욱, 애견 훈련사의 훈련 과정을 보면서···

나는 반려묘, 반려묘의 유튜브 방송을 가끔 봐. 주인도 없이 거리를 헤매던 나약한 존재. 그러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공간을 내주는 장면을 보면 사람들이 착해 보이고 이를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가끔 강형욱이라는 훈련사의 방송을 봐. 그는 개를 매우 좋아한다. 개를 보면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와 사람이 서로 행복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는 강형욱 훈련사가 나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개를 훈련을 통해 변화시키는 방송을 봤다. 오래전부터 봐왔지만 이에 대한 글은 이제 와서 쓰는 이유는 사람이나 개나 교육하는 방식은 거의 같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개의 특징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사람이 살던 곳에 입양이 돼서··· 어미 개로부터 아무런 정보나 지식도 받지 못하고··· 사람이 주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내가 살았던 것이 옳은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냥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훈련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가 반려하고 싶은 동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걸 모르고 그냥 예쁘고 아쉽다고 입양을 하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사람은 애완동물이나 반려묘에게 사람과 다른 동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잘 모르면 가르쳐야 하고 잘못하면 다시는 못하도록 단호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고 그걸 방관하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커지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 첨부한 개도 마찬가지다. 그 개 옆에는 그 개가 짜증을 내면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이 있다. 결국 강형욱 훈련사는 개를 키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개를 좋아하고 사랑해도 그 개가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로 남아 있는 한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유지할 때,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사랑과 정성으로 사람을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윤석열과 한동훈이라는 존재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죄책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기준은 도덕성이 아니라 힘이야말로 정의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반려묘, 반려묘의 유튜브 방송을 가끔 봐. 주인도 없이 거리를 헤매던 나약한 존재. 그러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공간을 내주는 장면을 보면 사람들이 착해 보이고 이를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가끔 강형욱이라는 훈련사의 방송을 봐. 그는 개를 매우 좋아한다. 개를 보면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와 사람이 서로 행복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는 강형욱 훈련사가 나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개를 훈련을 통해 변화시키는 방송을 봤다. 오래전부터 봐왔지만 이에 대한 글은 이제 와서 쓰는 이유는 사람이나 개나 교육하는 방식은 거의 같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개의 특징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사람이 살던 곳에 입양이 돼서··· 어미 개로부터 아무런 정보나 지식도 받지 못하고··· 사람이 주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내가 살았던 것이 옳은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냥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훈련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가 반려하고 싶은 동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걸 모르고 그냥 예쁘고 아쉽다고 입양을 하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사람은 애완동물이나 반려묘에게 사람과 다른 동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잘 모르면 가르쳐야 하고 잘못하면 다시는 못하도록 단호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고 그걸 방관하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커지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 첨부한 개도 마찬가지다. 그 개 옆에는 그 개가 짜증을 내면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이 있다. 결국 강형욱 훈련사는 개를 키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개를 좋아하고 사랑해도 그 개가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로 남아 있는 한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유지할 때,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사랑과 정성으로 사람을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윤석열과 한동훈이라는 존재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죄책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기준은 도덕성이 아니라 힘이야말로 정의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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